미국-중국 기술 전쟁: 미국의 ‘중국 테크 압박’ 전략은 실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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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 부문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답변을 갈음할 수 있는 상징적 상품이 2023년 8월 등장했다.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가 출시한 5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다.
이 스마트폰에는 최첨단 ‘7나노(nm)’급 반도체가 장착되었다. 중국 국유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가 만든 기린 9000s다. 전 세계가 경악했다. 중국인들이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네덜란드 등 우방국 민간업체들까지 아울러 최첨단 반도체 및 그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7나노급 반도체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노광 장비’인 EUV(극자외선)가 없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반도체 제조는 실리콘 판(웨이퍼)에 극히 미세한 설계도를 그린 뒤 그대로 깎아내는 과정이다. ‘노광’은 설계도를 그리는 공정이다. 설계도에서 선들의 간격이 좁을수록 고성능 반도체다. 7나노급이란 선과 선 사이 거리가 7나노란 뜻이다. 나노는 길이 단위로 ‘머리카락 두께의 100만 분의 1’이다. 이 정도로 극미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노광 장비는 ASML의 EUV밖에 없다. ASML은 EUV를 중국에 공급하지 않았다.
기린 9000s의 등장은 ‘미국이 막아도 중국은 돌파해낸다’는 암묵적 선언이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가로 등극할 것이라는 예언적 상징처럼 보였다. 〈인민일보〉(9월12일)는 “미국의 경제제재가 중국의 기술발전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라며 기염을 토했다. 〈이코노미스트〉(11월13일)에 따르면, 중국의 “소셜미디어엔 화웨이 광고판 앞에서 절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업로드되었다”.
미국 여론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한쪽은 ‘중국이 수출통제를 극복하고 최첨단 테크를 자체 개발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목적(중국의 기술발전 저지)’을 달성하기는커녕 미국과 동맹국들의 민간업체나 괴롭힌 대중국 수출통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쪽은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가 불완전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제재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수출통제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기린 9000s가 수출통제의 ‘빈틈’ 덕분에 양산 가능했고 ‘경제적 합리성’도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11월30일)에 따르면, SMIC는 EUV의 하급 버전인 DUV(심자외선)로 기린 9000s를 제조했다. DUV도 ASML이 만드는 노광 장비다. EUV가 10나노 이하 반도체에 사용되는 반면 DUV는 주로 30~40나노급 반도체(10나노에 비해 저성능) 제조에 채택된다. 그러나 DUV로도 제작공정을 개량하고 늘리면 7나노급 칩의 설계도를 그릴 수 있다. 다만 제조공정을 추가하는 만큼 생산비용 및 불량품이 증가한다. 나사 죄기에 비유한다면, 머리 홈의 형상(일자, 십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경우에 비길 수 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여러 차례 시도하면 나사를 죌 수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힘과 시간(=생산비용)이 든다.
그래서 기린 9000s의 수율(설계한 칩 가운데 정상적으로 생산된 칩의 비율)이 낮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기린 9000s 제작 관련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라 이 제품의 수율을 30% 정도로 추정했다(70%는 불량품).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현재 삼성전자와 타이완 TSMC는 7나노보다 미세한 4나노 공정에서도 각각 75%와 80%의 수율을 기록하고 있다. 극도로 경쟁적인 반도체 시장에서 이 기술격차는 해당 업체들의 흥망을 결정할 정도로 엄중하다. 불량품이 많고 생산비가 높은 반도체는 ‘시장경제’적으로 합리성이 없다.
기린 9000s 양산은 중국 이외 다른 나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수위의 ‘국가-기업 결합’으로 가능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화웨이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2년에 중국 정부로부터 전년도의 두 배에 해당하는 65억5000만 위안(약 1조200억원)을 지원받았다”. SMIC도 지난 3년 동안 68억8000만 위안(약 1조2600억원)의 국가보조금과 국영 펀드의 지원금을 수령했다. 〈이코노미스트〉(11월13일)는 “메이트60 프로를 (미국과 중국 간) 테크 전쟁에서 ‘결정적 한 방’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평가했다. “기린 9000s가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중국이 EUV 없이 자체적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성과를 달성한 제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메이트60 프로엔 한국 SK하이닉스가 만든 메모리칩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SK하이닉스는 수년 동안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았다는데도 말이다. 중국 업체들이 ‘비공식 시장’을 통해 손에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선 대중국 수출통제를 완화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통제 범위도 넓히는 것이 합목적적이다.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는 지난 11월 중순의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첨단기술 수출통제에 대한 시진핑의 불만에 바이든이 단호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첨단기술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약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다.”